박찬욱 감독의 신작은 단순히 ‘개봉’한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그동안의 모든 필모그래피의 무게를 안고 ‘도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올드보이》, 《아가씨》, 《헤어질 결심》과 같은 걸작을 통해 구축된 커리어 덕분에 그의 이름 석 자는 이미 관객에게 신뢰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당연히 《어쩔수가없다》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영관을 나서며 남은 솔직한 감정은, 이번 작품이 박찬욱의 작품 중 다소 약한 편에 속한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렇다고 영화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보자면 박찬욱 영화 특유의 요소들이 충실히 자리하고 있다. 손예진은 절제와 폭발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배경 또한 탁월하다. 가을 은행잎이 흩날리는 한국 시골의 낡은 집은 카메라에 담기 위해 존재하는 듯 완벽한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역시 촬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빛과 질감, 정적을 포착하는 박찬욱 특유의 시선은 여전히 독보적이며, 일부 장면은 잘라내어 바로 ‘박찬욱 명장면 모음집’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다. 가장 큰 약점은 리듬이다. 초반부는 뚜렷한 방향 없이 방황하고, 일정한 톤을 잡는 데도 실패한다. 약 45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핵심 서사가 드러나지만, 그 이후에도 이야기는 가속도를 내지 못한 채 답답하게 이어진다. 박찬욱 영화라면 언제나 관객의 목덜미를 단번에 붙잡는 순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끝내 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설정 자체는 시의적절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도덕적 타락을 감수해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구조와 맞닿아 있으며, 압박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가치를 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서 과감함은 사라지고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전개만이 남았다. 《아가씨》의 치밀한 사기극이나 《복수는 나의 것》의 잔혹한 도덕적 나락을 보여주던 감독의 손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이번 작품은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이야기는 예상하기 쉬워졌고, 대체로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충격적 반전 대신 남은 것은 교훈적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경제적 압박과 가족 부양의 무게 속에서 한 남자가 어떻게 윤리를 저버리는가. 주제 자체는 여전히 의미 있지만 날카로움은 없다. 박찬욱 영화가 가진 불편한 진실의 칼날은 이번에는 무디게 갈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발견은 블랙 코미디다. 박찬욱이 기묘한 유머 감각을 작품에 녹여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쥐》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확인되듯, 잔혹함과 웃음을 교차시키는 능력은 그의 특기였다. 그러나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이 요소가 전면으로 부각된다. 음모가 드러난 이후 영화는 어둠 속으로 깊이 내려가기보다 주인공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인물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유머는 억지스럽지 않으며, 위태로움과 희극성이 교차하는 순간에 영화는 가장 빛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놀라움은 이야기의 중심축에 블랙 코미디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쉬움은 캐스팅에서 비롯된다. 이병헌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배우이며, 차갑고 위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요구된 것은 그런 카리스마가 아닌 어설픈 범인의 모습이었다. 어두운 장면에서는 제 몫을 다했지만, 희극적 상황에서는 주변 배우들의 에너지를 따라잡지 못했다. 특히 손예진과 함께한 장면에서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눌려 상대적으로 경직된 인상이 강했다. 잘못된 연기는 아니지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느낌이다.
작은 디테일 속에서도 박찬욱의 사회적 시선은 드러난다. 손예진이 이혼한 싱글맘으로, 이병헌이 대학 학위조차 없는 블루칼라 노동자로 설정된 것은 분명한 의도다. 이는 상류층을 전면에 내세운 《기생충》과 차별화된다. 감독은 하층민조차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꺼이 윤리를 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계급을 초월한 탐욕과 절망을 드러낸다. 다만 메시지가 분명함에도 전달 방식은 다소 헐겁게 느껴진다.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자면 《어쩔수가없다》는 《스토커(2013)》에 가깝다. 공들인 연출과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지만, 작품 전체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안에 다시 한 번 확인할 계획이지만, 그것은 작품을 새삼 음미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혹시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에 가깝다. 대부분의 박찬욱 영화가 재관람의 즐거움을 주는 반면, 이번에는 재확인의 필요성만 남는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박찬욱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세운 감독이다. 가장 혁신적이고 대담한 작품들을 만들어온 인물에게 “괜찮다”라는 평가는 곧 실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계가 침체된 현재, 《어쩔수가없다》가 여전히 빛나는 성취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는 분명 하위권에 속한다.
결국 《어쩔수가없다》는 훌륭한 배우진과 시의적 주제, 특유의 미학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꽃피우지 못한 작품이다. 번뜩임은 있었지만 과감함은 부족했고, 가능성은 풍부했으나 결실은 미약했다. 극장을 나설 때의 기분은 분노도, 큰 실망도 아니었다. 그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조용한 아쉬움뿐이었다. 어쩌면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찬욱을 향한 기대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